▲ 사진출처(박봉팔닷컴)


삶과 괴리된 언론을 거부한다.

임혜경(수원여성회 상임대표)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살기 어떠냐는 질문을 할 만큼, 갈수록 우리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항상 먹을 것이 없다고 투덜대지만, 장을 보려 가보면 예전처럼 선뜻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놓고 바구니에 담지 못하고 몇 번을 생각하고 바구니에 담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하던 외식을 하지 않은지도 오래 되었다. 매월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학교공과금, 급식비, 보험료, 학원비는 둘째치고라도 몇 년 후 대학에 들어갈 아이들을 생각하면 연 1,000만원에 달하는 대학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은 혹시라도 가족 중에 누구라도 아프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까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화상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삶이 격리되어지고 있나’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일이며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TV드라마나 언론에 비쳐지는 사회상은 그야말로 내가 누리지 못하는 풍요로움을 보여주고 있어 나만 어려운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나만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발견한다. 언론과 매체가 우리의 삶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FTA 비준을 두고 연일 언론은 기사를 날린다. 제목으로만 보면 보수언론의 기본입장은 한미 FTA의 원할한 비준이며,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의견은 갈등에 불과한 듯하다. 노동자대회를 기념하여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한미 FTA반대집회에 대하여 14일자 조선일보는 ‘... 갈등없이 끝나’라고 전하였다. 고려의 가치도 없을 것 같은 선비준 후협상이라는 상식이하의 카드를 들고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한 이후에는 16일자 동아일보에서 ‘ 여야간 강경충돌,, 한미FTA파국으로 가나’라는 헤드라인으로 충돌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여기서 ‘파국’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나 생각해 본다. 사전적 정의로는 ‘일이나 사태가 잘못되어 결판이 남. 또는 그 판국’이란 말로 애초부터 한미 FTA가 국회에서 비준되는 것이 일의 순서라는 것을 시사한다.
 
언론은 항상 국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를 갈등의 관점에서 다룬다. 문제는 갈등을 사회적 논의를 통해 보다 발전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보기 보다는 갈등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지켜보는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또 그래!’라는 생각으로 알 수 없는 피로감에 젖어들게 해버린다. 논점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도가 좋겠지만 그 논점을 부각시켜 국민들이 자기 삶의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하게 하기 보다는 갈등으로 나타나는 현상에만 집중하여 보도하게 된다.
 
한미 FTA가 비준되면 몇몇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업문제뿐 아니라 노동자의 지위도 열악해진다. 복제약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제약회사도 어렵게 될 것이고, 약을 사먹어야 하는 국민들의 부담도 커지게 된다. 동네상권이 무너진지 오래이지만 이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들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영리병원이 허용되어 의료비도 폭등한다. 서두에서 밝혔던 우리집 살림살이가 더 쪼그라들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언론들은 한미 FTA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갈등으로만 부각시킨다. 
 
난 언론비평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비평을 위해 보수언론을 봐야 한다는 것이 탐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언론비평보다는 대안언론을 만들어 가는데 경기민언련이 좀 더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나는 꼼수다’가 인기다. 왜냐? 우리들이 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나꼼수가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하지 않는 집단에 희망을 걸기보다는 새로운 대안을 스스로 창조하려고 한다. 권력구조와 함께 해야 하는 언론의 작동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한 그들의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난 요즘 우리들의 일상을 비쳐주고 후련하게 우리 이야기를 해줄 새로운 언론에 더 주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