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상(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지난 10월 2일 정부는 밀양765kV 송전탑 공사강행을 위해 공사장비와 인력을 3000명의 경찰력과 함께 현장에 투입했다. 이후 밀양을 관통하는 송전선로를 따라 곳곳에서 주민들과 경찰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일흔 줄이 넘는 반대운동 주민들에게 잘 훈련되고 압도적인 숫자의 경찰력은 그 자체가 반인권이고 폭력이다. 신성하다는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할 의경들은 자신의 가족과 닮은 할매·할배들의 눈물과 분노와 저항 앞에 건조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서있다. 때론 비아냥거린다. 노인들의 마지막 남은 생의 자존감은 그렇게 자손들의 신성한 의무 앞에 무력감으로 몇곱의 상처로 돌아선다. 밀양의 현장에서 젊음은  비겁함과 무관심을 강요당한다. 그 학습이 더 두렵다.

 

밀양에는 상식보다는 힘의 논리를 따라가는 논란만 존재한다. 몸통없는 꼬리만 판치는 형국이다. 그 중 하나를 짚어보면 이렇다.  정부와 한전의 공사강행의 가장 강력한 명분이었던 신고리3호기 전력 송전은 중요 부품인 제어케이블 성능실험 실패로 인해 그 시기가 미뤄질 수밖에 없다. 설사 고리 1~4호기와 신고리1~3호기에서 나오는 전력 모두를 기존의 345kV 송전선으로 송전하다해도 그 이용률은 적게는 13%에서 많게는 60%까지 남는다고 한국수력원자력(주)의 내부 자료는 밝히고 있다. 그리고 2025년까지 차례로 그 설계수명을 다하는 고리 1~4호가 억지로 안전규정을 어겨가며 수명연장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여유폭은 더욱 커질 것이다. 결국 밀양765kV 송전선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핵발전 확대정책으로 수명을 다한 원전을 대체할 신규 발전소가 들어선다하더라도 기존의 송전선로와 지중화가 가능한 345kV 신규송전선로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정부와 한전은 무리하게 밀양765kV 송전선 건설을 강행하는 것일까? 명분은 경북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이란다. 그러나 그곳은 현재로도 지역전력생산이 남아돈다. 더구나 그런 명분이라면 초고압의 765kV 송전선로는 필요가 없다. 결국 밀양의 송전탑은 신고리5,6호기 등 더 많은 핵발전소를 지어 자급률이 낮은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도시 주민들의 전기 과다사용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나 독일의 3분의 1에 불과한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 때문이다. 이는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회의 활기를 값싼 전기로 유지하고 싶은 것일까? 결국 밀양 송전탑은 자본의 돈놀음이다.

 

경치 좋고 물 좋고 공기 맑은 밀양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엔 자리하고 있을 우리의 고향을 닮아있다. 국가주도의 산업화라는 압축성장의 시기 고향은 아련한 추억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희생 그 자체였다. 그처럼 밀양은 젊은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우리네 부모들만 남아 억척스럽게 지켜 온 그 고향 마을을 그대로 닮았다. 부모네들은 할매·할배가 다 되었고 깊이 페인 주름살만큼  아이들은 공부하고 노력해 성실한 노동자가 되었다. 그 고향의 자손들이 도시로 나가 오늘날 풍요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들의 값싼 노동력과 착한 세금 그리고 정부의 암묵적이고도 일방적인 지원시스템에 기대어 국가와 재벌(자본)은 엄청난 부를 축적해왔다. 언제나 우리사회의 중심의제인 경제적‘낙수효과’는 성공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많은 행복을 잠재워왔다. 그래서 착하고 부지런한 자손들은 더 열심히 일해야 했고 어느덧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뤘다. 그렇게 해서 그 자손들은 겉모습을 그럴듯하게 치장할만하고 남에겐 자존심 조금 세울만한 약간의 풍요를 가졌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싶은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다. 역대 최고의 무역흑자와 자본수익을 자랑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아이들은 그 불가능한무한성장 벨트의 자동부품으로 쓰이기 위해 무한경쟁형 인간이 되기를 강요받으며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다. 자본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고성장저고용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어 청년들은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가 어느 때보다 힘들다. 하지만 정부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사회공공성 강화와 안전망을 튼튼히 하기 보다는 공공부문의 민영화 등 사적영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본의 이익을 위한 노동의 유연성만 강화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국가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며 노동의 희생으로 성장한 자본은 수익률이 낮아졌다며, ‘노동’이 자꾸 ‘떼’?쓴다고 해외로 생산 공정을 옮기고 돈을 꽁꽁 싸매고 있으니 일자리 나누기는 헛구호에 불과하다. 과연 우리나라 자본의 성장이 그들의 투자리스크에 합당한 보상인가? 이 땅의 재벌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자격을 항변할 수 있을까? 파이를 크게 키워 나눈다는 것은 철지난 논리이다. ‘낙수효과’란 원래 없는 것이다. 나누어 공유하고 공존하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 결국 우리의 이만한 풍요도 ‘함께살기’의 원리를 원천으로 삼는 민주주의의 열매인 것이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공존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 성장관리를 통해 삶의 질적 향상을 꽤해야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와 자본은 아직 성장 일변도를 대변하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와 더욱 치열하게 경쟁해야하고 누군가를 더 희생시켜야하고, 그 누군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아이들은 자연을 멀리하고, 친구와 거리를 두고, 가난을 무능으로 여기며, 약함을 핍박하는데 쉽게 동조하며 그러한 부정의를 쉽게 방관하여 양심에 상처를 받을 것이나 비겁함을 끊임없이 강요당할 것이다. 여기서 서로의 차이는 차별로 둔갑한다. 또한 나의 먹고 쓰고 입는 것이 어디서 오는 것을 모르고 쉽게 사고 쓰고 버리니 부모나 남의 수고로움을 귀하게 여길지 모르며 남의 희생을 고마움과 연민보다는 낙오자의 당연으로 바라 볼 것이니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모르고 먼 곳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가까운 이들의 아픔을 내 것처럼 여기지 못하니 어찌 함께 사는 ‘사회’를 알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런 사회에서는 일제치하를 지나 대대로 평생을 일군 땅은 단지 지폐 몇 뭉치로 쉽게 대체되고, 그 땅을 지키기 위한 목숨을 건 저항은 시골노인네들의 돈 몇 푼 더 받으려는 집단 ‘뗑깡’으로 쉽게 치환된다. 바로 여기에 밀양의 ‘강요당한 희생’이 있는 것이다. 사회를 상실한 시대, 이러한 토양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독버섯 같은 것이다.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기를 바라며 남에겐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희생처럼 정부가 강조하면, 언론은 희생자들에 대한 연대와 연민을 ‘외부불순’으로 몰아 우리가 비겁해질 것을 강요하고, 강요된 희생을 공공이익을 위한 필수요소로 각색한다. 여기서 공공의 이익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에 다름 아니며 그 다수는 왜곡된 여론에 현혹된 대중의 ‘전력대란 염려증’ 자체이며 여기에 기댄 소주 자본의 돈놀음 그 자체이다. 그리고 자본은 그 ‘왜곡’에게 수고비를 지불한다. 조직범죄나 다름없다. 우리는 사회를 회복해야한다.

 

밀양 그곳은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가 정점에 오른 나라에서, 국가와 자본이 결탁한 폭력이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정부의 값싼 전기에너지 공급체계와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체계가 총체적으로 맞물려가는 구조에서 고위험·중앙집중형·대량핵발전 확대정책은 수많은 밀양을 양산할 것이고 그 자체가 거대한 저항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밀양은 핵발전 확대정책의 희생양이 아닌 지역분산형 전력생산체계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로의 시대적 전환점이 되어야한다. 삶은 좋은 것, 편한 것을 당연으로 산다. 그래도 나의 쾌락이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둔갑한다면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그것을 방관하고 조장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비범하고 혁명적인 것이 아닌 그저 상식적이고 평범한 사회에 살고 싶다.

 

 

지난 11월 30일 밀양으로 향한 수원지역의 희망버스는 산외면 도곡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110호기 송전탑 공사현장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다. 새벽부터 한전직원들과 경찰의 임무교대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방해?하기 위한 활동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장을 직접 보니 서럽기까지했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평소 늘 있는 일인양 무덤덤하다. 흔들림이 없다. 할머니들이 의경부대에게 아침식사를 지급하고 나오는 차량을 마을회관 옆 골목길에서 막아선다. 욕지거리도 배부르게 한바가지 퍼준다. 해서 물었다. “할머니! 밥차가 어떻게 들어갔데요?”, “응, 애덜 밥은 믹여야제 굶기먼 못써”하신다. 울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