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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자료/火나는 뉴스

떼법, 떼잡이란 말 왜 생겼는지 알고나 쓰나?

 

경기민언련 운영위원 최준영

 

언론은 오로지 진실의 편에 서야 한다.

 

축 구, ‘한-일’전이 벌어지면 우리는 한국을 응원한다. 당연한 일이다. ‘북-일’전이 벌어지면 북한을 응원한다. 역시 당연하다. 그러나 ‘브라질-일본’전이 열리면? 브라질과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이해관계가 있지 않다면 대체로 일본을 응원하게 마련이다. 일본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가 다투면 대부분은 약자를 응원한다. 그게 인심이다. 인지상정이고 본능이다. 약자를 편드는 게 보편적 정서이고 인지상정이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인심을 좇고 인심을 존중한다.

 

그러나 언론은 약자의 편이어선 안 된다. 물론 강자의 편이어서도 안 된다. 언론은 철저하게 중립적이어야 한다. 편을 든다면 철저하게 ‘사실과 진실’의 편이어야 한다. 지 극히 원론적인 얘기를 꺼내든 데는 이유가 있다. 요즘 우리 언론의 행태가 수상하기 때문이다. 사실과 진실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특정 편을 든다. 어떤 신문은 드러내놓고 강자를 두둔한다. 약자에겐 매를 든다. 철저히 강자의 논리를 따른다. 권력의 주구(走狗)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다.


강자의 편을 들고, 약자에겐 매를 드는 일부 언론


용 산참사를 보라. 철거민과 진압경찰 중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 아니,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일부 언론은 이상한 논리로 강자의 편을 든다. 참으로 교묘하고도 음흉한 수사로 약자를 매도한다. 오늘자(28일) 중부일보 편집국장 김종구의 칼럼이 한 예다. 제목부터 가관이다. ‘경찰의 진압은 罪가 아니다’ 제목만 보면 마치 그동안 누군가가 ‘경찰의 진압을 죄’라고 했던 것처럼 들린다. 그런 사람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칼 럼 인용) “TV속에 비쳐지는 건 참혹한 장면 일색이다.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 그 속에서 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시위대의 모습. 여기에 열기(熱氣)를 피해 건물 끝에 매달려 있다가 추락하는 철거민의 모습…. 특공대는 힘없는 철거민들에게 화염방사기를 쏘아댄 진압군, 경찰 간부는 특공대들에게 ‘007 살인면허’를 넘겨준 원흉…. 청와대야 뒤에서 모든 작전을 총지휘하는 폭력정권의 본산….(...) 하지만 이건 진실도 아니고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현상의 일단(一斷)일 뿐이고 진실의 단편(斷片)일 뿐이다.”


여 기까진 타당한 지적이다. 특히 “이건 진실도 아니고 진실이 아닌 현상의 일단(一斷)일 뿐이고 진실의 단편(斷片)일 뿐이다.”는 말은 진실에 가깝다. 그래서다. 유족들과 대책위가 당시 벌어진 상황과 관련된 모든 영상자료와 그 외 자료들을 공개하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경찰은 유족들의 주장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심지어는 사체부검마저 일방적으로 해놓고 공개하길 꺼린다.


유족과 대책위의 한결같은 주장, 모든 자료를 공개하라!  


이 런 상황에서, 언론은 지극히 제한적인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방영시간(TV)과 지면제한(신문) 때문에 입수한 자료조차 죄다 보여줄 수 없다. 결국 자신들의 ‘프레임’을 보여줄 뿐이다. 그건 언론의 편파성이 아니라 언론의 현실이다. 시빗거리가 아니다.


(칼럼 인용) “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60%가 ‘선(先) 진상규명, 후(後) 책임자 처벌’을 지지한다고 나와 있다.(...) ‘육법(六法)’보다는 ‘떼법’이 앞서 온 우리 사회에 대해 신물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없는 여론조사 결과는 유령의 말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기본도 안 된 글이다. 더구나 “‘육법’보다 ‘떼법’이 앞서 온 우리 사회에 신물을 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선 아연 실소가 터져 나온다. 


대 체 ‘떼법’의 유래를 알고 하는 소린가. 비유컨대, 각 구청 복지과에는 빈곤계층을 위한 자활근로 일자리 배분권한이 있다. 신청자는 많고 인원은 제한돼 있으니 재량권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객관적인 선발기준보다 우위에 있는 게 담당자의 자의적 판단이다. 그 잘난 것 얻자고 공무원에게 줄을 서는 사람이 나온다.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하는 게 떼를 쓰는 것이다. 좀 전까지 외면하던 공무원도 떼를 쓰고 찍자를 붙는 이에겐 마지못해 일자리를 준다. 당연히 줘야 할 것도 꼭 떼를 써야만 주는 것이다. 관행화 된지 오래다. 여기서 유래한 게 일명 ‘떼법’이다. 관료주의의 폐해가 만들어낸 게 법전에도 없는 ‘떼법’인 것이다.


결국 ‘떼법’을 만들고 이용한 건 공무원들이고, 공권력이었다. 이제 와서 앞장서 ‘떼법’ 운운하면서 철거민들을 비판하는 건 가증스런 일이다.   


‘떼법’을 만들고 이용한 건 공무원, 공권력이다.


(기 사 인용) “조만간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될 거라 한다.(...) 눈치 보지 말고 법에 따라서만 결론내길 바란다. ‘죄’가 있으면 감옥에 넣으면 되고, ‘죄’가 없으면 무혐의처리하면 된다. ‘책임’의 판단은 검찰이 할 일이 아니다. 그건 국민이 할 일이다.”


이 게 무슨 말장난인가. 결론은 검찰이 내고, 책임의 판단은 국민이 한다? 칼럼의 기본논조가 헷갈린다. 구체성을 주요한 구성요건으로 하는 법의 정신을 논거 하는 줄 알았더니, 뒤에선 뜬금없이 추상적이며 지극히 관념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결국 하나마나 한 소리를 알은 체 좀 하겠다고, 알량한 편들기 혹은 '빨아주기'를 하겠다고 쓴 게 아닌가. 비평할 가치조차 없는 글이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니 못내 씁쓸하기만 하다.


이런 얼치기 언론인의 두서없는 글을 비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런 수준미달의 칼럼들이 횡행하는 것이야말로 ‘검찰과 국민의 판단’을 결정적으로 흐리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의미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