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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자료/火나는 뉴스

언론수용자 알권리와 인권

이주현(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군포여대생 살인피의자, 강호순의 추가 살인행위가 알려지면서 전국이 분노와 공포에 치를 떨고 있습니다. 힘없는 부녀자들을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전락시키며 7명이나 살해를 한 인면수심의 피의자는 마땅히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며, 어떠한 처벌을 받더라도 동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살인피의자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피의자 강호순의 추가 살인에 대한 자백과 현장검증이 이어지면서 살인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느냐 마느냐로 언론은 연일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31일, 중앙일보와 조선일보가 공개를 하고 이어 MBC가 공개를 하면서,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얼굴 공개를 둘러싼 논쟁이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2월 3일부터는 경기지역일간지에서도 피의자의 얼굴을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보도는 "시회안전망이 우선"이라는 공익적 가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만, 호기심 충족을 통해 신문 한 부 더 팔고 시청률이나 올리자는 얄팍한 술수로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이후 보수적인 논객들은 사형제도를 옹호하며 집행을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일단, 공분 해소나 대중의 호기심 충족은 됩니다만, 사건에 대한 논점 일탈과 그에 대한 고민들이 좀처럼 보이질 않습니다. 그것으로 언론의 사명을 다했다면 그것은 정론이 아니라 3류 전단지나 포르노에 불과합니다.

 7명의 부녀자를 연쇄 살인한 강호순은 싸이코 패스로 판명이 났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사회적응을 하지 못하는 '인격장애자'라는 말입니다. 이런 이는 비열하고 폭력적인 행태를 통해 주변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범죄의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사이코 패스는 유전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 그리고 환경적 요소를 통해 형성되는 인격장애라는 점에서 피의자가 살았던 사회도 그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얼굴 공개가 우선이 아닙니다. 얼굴 공개로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된다면 얼마든지 공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얼굴 공개와 사회안전망 구축 사이에는 유의미한 관련이 없는 것으로 국제적으로 이미 검증이 된 내용입니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인권에 대한 수준 높은 의식과 사회적 통합능력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연쇄살인사건의 논점은 여성을 성도구로만 생각하게 하는 사회적 병리현상과,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도구로 사용하려는 무분별한 욕망의 분출방식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끄집어냈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러한 인격장애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이 사회도 한 몫을 했을 것이라는 반성적 성찰과 그로 인해 빚어진 엄청난 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 그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 "사회안전망 구축"에 걸 맞는 의제였을 것입니다.

 얼굴 공개로 인해 제2,3의 피해자가 속출하는 시점에서, 흉악한 살인범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괜찮다는 감정적 여론이 두렵습니다. 이 시점에서 피의자 인권을 이야기 하는 것은 그의 행위를 두둔하거나 동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면수심의 연쇄살인범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살아있는 우리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다는 역사적 체험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권은 결코 양보 할 수없는 지고의 가치로 자리잡아왔고, 거기서 흉악한 살인범의 인권도 제외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얼굴 공개로 인한 논란은 우리나라의 인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용산참사는 그러한 사회분위기의 결과물입니다. 과정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멀쩡한 국민이 5명이나 불에 타서 숨졌으면 애도와 사과정도는 있어야하는 게 인간세상일 것입니다. 그것이 생략되고 법치와 원칙만 난무하는 모습은 또 다른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경기FM/99.9mhz, 2009년 2/8, 방송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