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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자료/火나는 뉴스

공개적 고백의 시대

 

▲ 지난 19일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홀트일산요양원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인들 앞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 청와대


홍숙영/ 경기민언련 운영위원.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사생활의 역사5’에서 제라르 뱅상은 “고해란 누설되지 않는 조건하에 비밀을 털어놓는 기회”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그는 고해한다는 것은 신이 이미 알고 있는 비밀을 신에게 알리는 것이며 오직 신만이 심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제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죄를 반성하는 고해 행위는 오랜 세월동안 인간을 선한 존재로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고 사제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고해의 기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특히 미디어의 출연으로 대중적 고백 행위가 빈번해지면서 고백은 더 이상 은밀한 행위가 아니라 공적인 행위로 변모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는 미디어를 매개로 한 공개적 자기 고백이다. 학력위조 파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정아는 “세상을 너무 쉽고 편하게 살려고 했다”면서 18개월간의 구치소 생활을 마감하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언론은 “마음 깊이 반성하고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며 선처를 호소한 그녀의 고백을 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으며 자신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고 고백했다.

말이 아닌 눈물도 고백의 행위 가운데 하나라고 볼 때 최근 들어 정치인의 잦은 눈물 공세 역시 눈여겨 볼 법하다.
김문수 지사는 무한돌봄 사업에 지원을 신청한 한 여성과의 상담 도중 모자 가장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그녀의 말에 연신 눈물을 닦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이 장면은 그대로 언론에 공개되었다. 대통령의 눈물도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장애인 합창단의 공연을 감상하면서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광경은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이처럼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고백은 늘 그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들은 과연 어떠한 의도로 진실을 밝히고자 하고 감정을 표출하고자 하는가? 따가운 비난의 시선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해명에 가까운 고백이나 주도권을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의 고백은 진심어린 ‘회개’를 동반하지 않기에 우리는 그 죄를 사해 줄 수 없다.

너무나 인간적인 정치인의 눈물은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그칠 뿐이다. 정치인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정치인은 각각의 사연에 대해 감정적 접근이 아닌 논리적 접근으로 시스템을 갖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고백은 눈물이 아니라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함을 반성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구술 행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미디어를 통한 공개적 고백의 시대, 그러나 심판은 국민 각자가 내리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몹시 준엄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이 칼럼은 4월 24일자 중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