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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언론에 시비걸다

인권을 지켜주는 공권력은 없는가

이민우(뉴스피크 발행인/경기민언련 운영위원)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에 반대해 온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제주지방법이 최근 이른바 ‘손해 배상’ 판결을 내렸단다.

 

시공사가 고권일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장 등 강정마을 주민 5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제주지방법원은 지난 11월 28일 총 26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강정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해군기지를 반대하다 체포·연행된 주민과 활동가는 649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473명이 기소됐고, 벌금 액수도 3억원이 넘는다.

 

2011년 8월부터 2년간 강정마을에 투입된 경찰병력은 무려 20만2천620명이다. 그동안 결찰은 숱한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주민들을 미행하고 사찰하며, 집회참가자들을 무차별 폭행하곤 했다. 법적 근거도 없이 구럼비 해안 출입을 전면 통제했으며, 평화적인 종교집회에도 난입해 미란다 원칙도 지키지 않고 연행했다.

 

<2011년 7월 18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앞 7~8월 비상투쟁선언 기자회견>

 

경찰만이 아니다. 해군은 강정마을에서 취재 중이던 여기자를 강제로 2시간 동안 억류한 채 욕설과 성희롱을 일삼기도 했다.

 

제주지방법원의 이번 판결로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강정주민들은 형사처벌에 이어 금전적 부담까지 떠안을 처지가 됐다. 최악의 경우 줄소송이 이어지면 파산자가 속출할 수도 있는 상황이란 게 강정인권위의 판단이다.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법원에서 주민들을 궁지로 모는 판결이 나온 셈이다.

 

이 판결에 대한 소식을 듣고 문득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해 여름 수원에 와서 강연햇던 게 기억났다. 김 지도위원은 다산인권센터가 20주년을 맞아 수원시평생학습관 교육실에서 진행한 기념특강 ‘인권과 민주주의’ 강사로 열강을 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85호 크레인 위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 지도위원은 <소금꽃 나무>(후마니타스)란 책을 쓴 노동자다. 김 지도위원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른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면 노동자와 진보인권진영이 연대해야 함을 역설했다.

 

강연 내용 중 가장 기억 남는 건 김 지도위원이 2012년 5월 독일에 방문했을 때의 경험담이다. 김 지도위원은 “독일도 집회를 하면 경찰들이 제일 먼저 달려온다”며 당시 겪은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이 다가와서 묻는 거예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느냐’고. 그래서 ‘당신들이 불편하다’고 했죠. 그랬더니 경찰이 ‘시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당신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결국 독일 경찰들은 멀찌감치 길 건너로 가서 집회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면서 ‘보호’해주더니, 집회를 마치고 갈 때 손까지 흔들며 인사하더라고 했다.

 

최루액 쏘고, 때리고, 연행하는 한국 경찰만 봐 왔던 김 지도위원은 물론 강연 참가자들 역시 ‘어색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관련 토론회에서 일어난 사연도 소개했다. ‘경찰의 평택 쌍용차 파업 진압’ 장면 영상을 본 한 독일 노동자가 깜짝 놀라더라는 거였다. “경찰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테러범 대하듯 할 수 있느냐”는 얘기였다.

 

악덕재벌이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해 주는 경찰, 건설업자가 아닌 철거민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경찰과 법원, 사회적 약자의 집회와 시위를 보장하고 지켜 주는 공권력을 보고 싶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지킴이, 인권보장의 든든한 보루인 공권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