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범(경기도학생인권심의위원회 부위원장)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삼 년째를 맞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당시부터 탈도 많고 말도 많았다. 그만큼 학교 안에 정착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정치적 이념의 잣대로 재단한 탓이 크다. 그러나 학생인권 정착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고정관념이다. 이른바 나이주의(Ageism)다.

 

 나이주의(Ageism)는 미국에서 유래한 말이다. 노인들에 대한 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1968년 로버트 N. 버틀러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과 어린이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설명하는 경우에 사용되며, 주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들의 생각을 무시하거나 그들에게 특정한 규범을 강요하는 것을 일컫는다.

 

 기성세대는 학생(비학생 포함 청소년)들이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미성숙하다고 전제한다. 성숙의 판단 잣대가 바로 나이다. 살아 온 세월과 경험 속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전적으로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아온 세월이 좀 짧다 하여 무조건 미성숙하다는 생각은 편견이요 아집일 뿐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삶의 과정에서 가치 있는 경험을 했느냐 하는 것이지 결코 나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안 주요조항>

 

 우리는 선한 마음으로 학생들(혹은 자식들)에게 최상의 것을 베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 이것 자체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우리가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큰 문화적 괴리가 있다. 따라서 최상의 것을 베풀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최상의 것을 청소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을 행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기결정권을 유보당한다. 어른이 될 때까지, 혹은 대학에 갈 때까지 모든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부모나 교사에게 저당잡힌 채 살아간다.

 

 학생은 미성숙하다는 고정관념은 청소년에 대한 보호 통제의 강화로 이어진다. 이는 학생들의 참여할 기회와 실수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스스로 책임질 기회와 성숙해질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미성숙한 존재로 남아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학생은 미성숙하다는 기성세대의 그릇된 관념이 학생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만드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학생을 보는 관점을 바꾸자. 그들을 양육의 관점에서 볼 게 아니라, 자기결정의 관점에서 보자. 불완전하지만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주고 자율과 참여와 책임을 강조하자. 학생은 단순한 보호의 객체가 아니다. 학생을 향한 특별한 걱정, 특별한 칭찬, 특별한 대우가 사실은 무시를 전제한, 혹은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생인권조례는 규범성을 재확인하고 구체화한 것이지, 없는 것을 찾아내 교권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제정된 것이 결코 아니다. 즉 인권조례의 내용은 우리나라 헌법, UN아동권리협약, 교육기본법, 판례,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례에 있는 것들을 확인해주는 정도이다. 또한 학생의 신체 안전권, 개성실현권, 프리아버시권 등에 대한 구체적 규범성을 확인해 준 것 뿐이다.

 

 이렇게 반문해보자. 나이가 많은 사람은 모두 성숙한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지 사람의 나이가 성숙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학생을 주체적 인간으로 바라보자. 인간의 존엄성을 그대로 인정해주자.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참고 기다려보자. 물론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면이 성장하는 법이니까. 그들에게 자치권을 돌려주고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자. 그래야만 자주적 생활능력도 민주시민의 자질도 형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