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경영평가단’ 구성, 원점에서 재논의 하라

 

 

박근혜 정권의 안하무인 행태가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 방문진 여권 추천 이사들이 MBC의 한 해 경영을 평가하는 ‘MBC경영평가단’(이하 평가단) 구성을 야권 추천 이사가 불참한 가운데 처리해 평가단 인선을 독식해버린 것이다. 날치기에 가까운 폭거다.
    
지난 12월 3일 평가단 구성을 논의하기 위한 첫 번째 회의인 ‘MBC 경영평가소위원회’(이하 평가소위)가 정기 이사회 직후 예정되어 있었다. 이날 정기 이사회에서는 ‘안광한 사장의 방문진 출석’과 ‘속기록 보존 및 회의록 실명제’ 관련한 안건이 상정되었으나 두 안건 모두 여권 추천 이사들 전원이 반대해 부결되면서 이사회는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로 끝났다. 3명의 이사들로 이루어진 평가소위의 이완기 야권 추천 이사는 이처럼 격앙된 분위기에서 소위를 이어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회의 연기를 요청했으나 여권 추천의 유의선․김광동 이사는 회의 강행을 주장했다. 회의 개최와 관련한 공방은 회의장 밖 휴게실에서도 계속되다가 결국 유의선과 김광동 2명의 여권 추천 이사들이 야권 추천 이완기 이사와 소위 간사인 임무혁 방문진 사무처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소위를 강행했고 평가단 구성을 결론지었다.


유의선 이사(평가소위 위원장)는 “위원 3분의 2가 참석했고, 과거 본인이 맡았던 교수회의 때도 3~4명 중 1명이 빠진 상태에서 그냥 결정”했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권 추천 이사 2명, 야권 추천 이사 1명으로 구성된 합의제 성격의 회의체에서 야권 추천이 빠진 상태로 내려진 결정이 어떻게 절차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교수회의 사례를 언급했지만 성격이 다른 교수회의와 평가소위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설령 회의가 강행되었더라도 중요한 의사결정은 전원 또는 최다수가 참석한 상태에서 결정하도록 미루는 것이 통상적인 회의체계의 상례다. 더구나 ‘평가단 구성’은 경영평가소위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일 뿐 아니라, 위원들의 이념적․정치적 지향에 따라 의견이 많이 엇갈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런데 야권 추천이사가 불참했고 간사도 공석인 불완전한 회의구조에서, 인선 방식도 결정되지 않은 채, 불과 30여분 만에, 단 한 차례 논의로, 여권 추천 이사 두 명이 일방으로 평가단 섭외대상을 결정한 것은 누가 보아도 납득하기 어렵다. 최소한 전화로라도 야권 추천 이사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예의일 터이지만 그 조차도 없었다. ‘평가단 구성’은 경영평가소위 역할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사항이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조급하게 결정할 사항이 결코 아닌데도 이처럼 날치기 하듯 처리할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평가단 구성은 절차의 문제뿐 아니라 내용상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평가 항목 중 방송이나 경영 분야의 평가는 평가 위원의 성향에 따라 평가결과에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KBS 이사회의 경우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단 구성을 위해 여권과 야권 추천의 이사들에게 방송, 경영 등 분야별로 각각 1명씩의 추천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방송분야는 방송의 공영성, 공정성 등을 평가하는 중요한 항목이다. 하지만 이번에 ‘방송II’분야 평가위원으로 결정된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윤영철 교수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정연주 사장체제의 KBS가 편파․왜곡보도를 했다고 공격했던 탄핵방송보고서에 참여했던 핵심인물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오히려 학계로부터 편파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공정성 개념이 무엇이냐는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보수적 언론시민단체인 공발연(공영방송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창립식에서 당시 권력 및 사회 비판적인 탐사저널리즘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일부PD가 정파적․이념적 이익을 위해 편파 방송하는 것을 마치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처럼 강변하고 있다”며 폄훼했던 인물이다. 이처럼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면서 언론의 본령인 권력이나 기득권 비판 기능을 깎아내리거나 부정적으로 판단한 인사가 공영방송 MBC의 프로그램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을 기대하기는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지금 MBC경영에서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나락으로 떨어진 뉴스․시사 분야임은 만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이는 방문진 평가보고서를 포함해 방송통신위원회, 학회, 매체, 기자협회 등 여러 기관들의 각종 조사에서 MBC가 공정성, 신뢰성, 다양성, 경쟁력 등의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데서도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강도 높은 평가와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완기 이사는 방송Ⅱ 분야만이라도 추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묵살됐다.

 

평가단은 방문진 산하 기구로 2001년부터 매년 경영평가를 실시해왔고 방문진은 평가단의 지적 사항을 바탕으로 MBC에 시정을 요구해왔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평가단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선이 강조되어 왔고 평가소위 위원들의 합의에 의해 구성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결정은 절차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여권 추천이사들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만 구성해 경영평가를 요식행위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평가단 구성을 원점에서 재논의 하라. 그럴 때만이 제대로 된 MBC 평가는 물론 방문진의 위상도 최소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끝> 

 

 

2015년 12월 29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새언론포럼,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