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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자료/火나는 뉴스

제정60년,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무엇으로 나라를 지키는가?
-제정 60주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하여-
 
이주현(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6.15 경기본부 운영위원)
 
  서슬 퍼런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인 정치가 지속될 때 전방의 고지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듯 한 북한군의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남을 향해 총을 겨눈 채, 적개심으로 가득한 눈초리로 남쪽을 응시하고 있을 것을 예상해서일까, 양지바른 언덕에서 담소를 하거나 반쯤 비스듬히 누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엄격한 군 기강을 강조하는 국군의 전방근무 규정과 비교하면 북한군의 모습은 엉성함 그 자체였다. 왜 저들은 남쪽의 국군처럼 절도 있는 모습 대신 흐트러진 모습으로 경계를 서는 것일까? 저런 모습으로 과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일까? 부동자세와 적개심으로 충만한 눈초리에 익숙한 군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그런 모습들이 나에게는 충격으로 와 닿았다.

  무엇으로 나라를 지키는가? 흐트러진 자세나 부동의 자세는 본질이 아니다. 사실, 그 자세 속에 담겨있는 의지와 배경이 중요한 것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그 흐트러짐은 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체제에 대한 우월감에서 비롯된 자신감의 표시일 수도 있다. 반면, 완벽한 군기로 제압된 국군의 근무기강은 동기유발의 허약함과 빈약한 충성심에 대한 반작용으로도 볼 수 있다. 어떤 군대이든 충성도가 낮을수록 군 기강은 강하게 마련이다. 이른바 강요된 규정으로 조직을 장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과연, 강요된 규정과 그로 유지되는 조직이 나라를 지켜낼 수 있을까?

  국가를 지켜내는 것은 그 구성원들 사이에 조성된 자긍심이다. 그 자긍심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신뢰는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존재감을 인정받을 때 가능하다. 그 존재감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 있다면 사상의 자유를 제약당하는 것이다. 사상 즉, 이념과 양심의 영역은 천부의 권리로서 그 어떤 법도 그것을 제약할 수 없다.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법이고 야만이다. 오히려 국가는 그것을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12월 1일은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1948년 친일파들이 득세한 가운데 출범한 대한민국정부에서는 독립 운동가들을 색출, 소탕할 목적으로 제정한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근간으로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법 제정의 취지는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법으로 인해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다. 물론 이는 취약한 정통성을 만회하려는 부패한 정권의 정권유지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사법부에서 자의적 판단에 의한 과오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죄를 했겠는가?

  지금은 뜸해졌지만, 남북을 왕래하는 인원이 100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북한 땅에 공장을 세우고 북한 주민들 수만 명이 일을 하고 있고, 헌법상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으면서 상대를 적으로 반국가단체로 바라보도록 시각과 관점을 일방적으로 제약한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가? 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가? 그러다보니 국가보안법은 손 볼 사람에 한하여 선택적, 자의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법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제 국민의 사상을 제약함으로 국가를 지킬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그런 만큼 우리 국민들은 충분히 성숙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고 목숨을 걸고 그 가치를 지켜낼 줄 아는 성숙한 국민이다. 이제 국가가 국민들을 신뢰하고 생명을 걸고 지킬만한 국가라는 자긍심을 심어줄 때이다. 그러려면 국가보안법 같은 야만적인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강요된 법과 규정이 아니더라도 이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어색한 부동자세와 적개심으로 충만한 눈초리만으로 이 나라를 지킨다는 시대는 이제 지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