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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자료/火나는 뉴스

정말 중요한 것


홍숙영/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경기민언련 운영위원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심야 학원 교습을 금지하겠다던 교육 당국의 안이 사실상 철회되었다. 실효성 문제와 거센 반대의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처럼 결국 세상은 공부를 잘하거나 재주가 있거나 괜찮게 사는 집 아이들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많은 청소년들은 집을 나가고, 성을 팔고,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데도 학원 교습을 몇 시까지 할까 말까에 대한 논의만 벌였던 것이다.
고교 2, 3학년 학생 10명 중 1명 이상이 성관계 경험이 있고, 중학생의 흡연율은 9%, 고등학생은 중학생의 두 배나 되는 18%에 이른다고 한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음주, 과체중, 다이어트 등으로 청소년들의 몸이 혹사당하고 있으며, 청소년의 40% 이상이 온라인 성인 게임을 경험하였거나 19세 미만 시청불가 방송 프로그램을 접촉한 바 있다고 답하는 등 일찍 성인의 세계에 뛰어들어 정신적으로도 갖은 혼란을 겪고 있다.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간 청소년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청소년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가출을 경험하였으며, 가출한 뒤 집에 돌아가지 않은 채 생활하고 있는 청소년의 상당수가 성매매에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 가출한 청소년이 잠시 동안만이라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쉼터’는 전국적으로 100여 곳도 되지 않으며, 이 쉼터는 가정이나 학교로 되돌려 보내는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잠시 머무는 장소에 불과하다. 이들은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성을 팔아 생활비를 해결하는 성매매의 세계로 쉽게 빠져들고 있다.
얼마 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고교 2학년 5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더욱 낙심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감은 비교 대상인 20개의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였기 때문이다. 위기에 놓인 청소년이 100만 명에 이르는데 논의의 중심에는 공교육과 사교육이 있을 뿐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청소년은 언제나 논외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무총리실이 정부 차원의 ‘위기청소년’ 보호·관리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얼마나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세부안들이 마련될지는 모르겠지만, 상처받고 버림받은 청소년들을 치료하고 보듬어 안는 적극적인 방안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격체인 청소년들의 이탈과 반항에 대해 기성세대는 인내심도 이해심도 보이지 않은 채 너무 빨리 포기해 버리고 만다. 부모와 학교, 사회에서 외면당한 청소년들은 점점 더 외딴 섬처럼 고립될 수밖에 없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위기의 청소년들이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마음의 위안이 되고,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아픈 곳을 치유해 주는 어른들의 성숙한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사랑하면서 기다리자. 진정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털어놓을 때까지. 그것이 학원 교습 시간을 정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아닌가.

* 이 칼럼은 5월 21일자 중부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