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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자료/火나는 뉴스

벌써 당신이 그립습니다.

 

벌써,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주현(경기민언련 공동대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참으로 극적이었다. 그 분 삶의 궤적이 그래왔듯 평범한 삶을 살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극적일 줄은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인가? 지난 5월 23일, 아침 서거 소식을 들으면서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멍 하니 앉아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가? 사실은 사실인 듯싶은데, 도무지 실감이 안 난다고 할까, 무슨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 도무지 순서가 생각이 안 나고 일손이 잡히질 않아 한참이나 공황상태에 빠져있었다고 할까...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직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충격적인 사실 뿐 아니라 부엉이 바위 밑 40m 아래로 몸을 던지는 그야말로 극적인 죽음이 주는 의미는 참 복잡했다. 박연차 뇌물수수 사건 이후, 검찰의 비정상적인 압박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서 금품 수수를 시인하는 모습은 그를 존경하고 따르던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전직 대통령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워 국면전환을 꾀하려는 현 정부의 꼼수를 감안하고서라도 ‘별 수 없이, 그 분도 한 인간이었구나’ 라는 자조는 필연이었다. 그 와중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판단중지’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판단중지’는 노 전 대통령의 억울함과 비통함, 그리고 자책에 대한 고통의 깊이를 더했을 지도 모른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검찰의 수사망과 비열한 언론플레이, 조중동의 하이에나 식 막말 퍼레이드, 그리고 우호적인 국민들과 정치권의 따가운 눈총 속에서 그 분이 의지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현실과 이상 속에서 고뇌하던 그 분의 인간적인 고뇌와 순진한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활보하던 노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중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극적인 요소와 그의 인간적 면모..그리고 그의 소박한 꿈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함, 그런 것이 이번 500만 추모 물결의 배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또 하나 보탠다면, 이명박 정권의 실정이랄까? 사실, 이명박 정권이 잘했다면(물론 잘 할리 없지만..)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일도 없으려니와 혹여 그랬을지라도 500만 인파의 추모 물결은 아마 생각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엄청난 민주주의 진전과 자유를 만끽한 국민들에게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공안정국은 정말 참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 스트레스’라고 했던가? 그 스트레스로 인한 인내의 한계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가 노 전 대통령의 자살과 맞물린 것이 아닐까? 암튼 울고 싶을 때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몸을 던져 국민들을 울린 셈이다.


 7일장이라는 국민장 기간 동안 수원역 분향소를 지키면서, 그러한 국민적 정서와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수북하게 쌓이는 담배, 오열하는 여고생, 어린 아이들을 데려와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절을 시키는 젊은 부모들.. 감히 상상 할 수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가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걸까? 분향소 설치 초기 4~5천 명이었던 분향 객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 영결식 전날인 28일에는 한꺼번에 60명씩 약식 분향을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12시, 자정이 되어서는 연화장까지 가서 추모분위기를 위한 노란리본 달기에는 무려 40여 명의 시민자원봉사자가 자원하여 새벽 2-3시까지 고된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태어나 3번 대통령을 한 셈이다. 2002년, 노란 풍선과 돼지저금통으로 한 번, 2004년 탄핵 촛불로 또 한 번, 그리고 이번 몸을 던져 국민들 마음속에 영원한 대통령으로.. 이렇게 세 번의 대통령을 한 셈이다. 그런 대통령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 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앞으로 이루어지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 분은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마음 속 대통령이라는 점은 부인 못할 듯싶다. 그것은 영원히 간직하고 남겨줄 정치적 유산이요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대중들의 의식을 한 차원 높이고 역사를 진전시키는 동력으로 길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그 분이 그립다.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맞이 추모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