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전자료/火나는 뉴스

말보다 말귀를 전해주는 언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말보다는 말귀를 전해 주는 언론

이주현(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지난 8.15 광복절의 풍경은 예년의 풍경과 좀 달랐습니다. 느닷없는 건국절 논란 때문만은 아닙니다. 올 해에는 다른 해에 비해 유난히 태극기를 많이 게양했다는 점입니다. 수원의 어느 지역에서는 8.15 광복절 3일 전부터 태극기를 게양할 것을 권유하는 바람에 온 동네가 3-4일 동안 태극기 물결로 넘치기도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멋진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이 연출되기까지는 8.15 광복절 며칠 전부터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태극기 게양을 권유한 공무원들과 통반장들의 계도활동이 있었습니다. 광복절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만, 수일 전부터 게양을 권유하는 모습은 썩 보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일 T.V.화면과 신문 지면에 나타난 모습은 아파트 베란다 마다 꽂혀있는 태극기 물결뿐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모습을 애국의 척도인양 보도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국경일 수일 전부터, 공무원과 통반장들이 동원되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태극기 게양을 계도하는 행태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계도를 할 것인지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아쉬웠습니다. 선진국 문턱에서 태극기 게양문제까지 일일이 계도를 해야 할 만큼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이 뒤떨어졌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것을 애국의 척도로 들이대며 빠짐없이 달아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오히려 후진적인 모습으로 와 닿습니다.


 지난 7월 31일,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에서는 수도권규제철폐와 관련 1,000만 서명운동을 선포했습니다. 갓난아이 빼고는 모두 서명을 받겠다는 무모한 계획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무모함은 불합리와 부적절이라는 오류를 만들어냈습니다. 민간인 단체에서 주도하는 서명운동에 관이 동원된 것입니다. 도지사가 앞장선 수도권규제철폐라는 의제를 도민의 입장으로 몰고 가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공무원과 통장에게 서명을 독려하고 시군구 읍면동 사무소는 물론 농협에까지 서명용지를 비치하여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경기도 북부 K시에서는 1개 동당 3,000명이 할당되었고 엑스포 열쇠고리를 받고자하는 사람에게 서명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수도권규제가 불합리하다면 당연히 철폐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서명운동은 도민들의 정당한 권리행사입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수도권규제철폐 서명운동에는 입장을 달리하는 도민들이 상당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절차와 쟁점들에 대한 친절한 안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진행 중인 서명운동에는 그런 절차는 생략되거나 아예 무시되고 있습니다. 토끼몰이식의 일방적인 주장만 난무할 뿐, 수도권 집중과 과밀로 인한 삶의 질 저하나, 빈사상태에 빠진 비수도권의 주장은 도무지 들리질 않습니다. 더구나 민간인 단체에서 주관하는 서명운동에 관이 동원, 하수인 노릇을 하는 모습도 꼴불견입니다. 이는 어떤 면으로 보나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는 현재까지 서명인 수와 들풀처럼 번지는 서명운동의 열기만 전할 뿐입니다.


 선진국 요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숙한 국민의식입니다. 성숙한 국민의식은 관이 주도하는 대로 이끌리거나 계도에 의해 길들여지는 의식이 아닙니다. 분명한 가치관을 갖고 스스로 움직이는 자발성이 바로 그 성숙의 척도입니다.


 그런 면에서 관이 주도한 광복절 태극기 게양 계도활동과 수도권규제철폐 서명운동은 분명 성숙하지 못한 후진적인 사고와 인식에서 비롯된 오류입니다. 그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하며 감시하는 것은 언론의 몫입니다.

 독자와 시청자들은 광복절 집집마다 휘날리는 태극기보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계도한 관의 행태가 더 궁금합니다. 수도권규제철폐 서명운동에 참여한 서명인수보다 엑스포 열쇠고리를 받기위해 서명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그것을 주도하는 세력의 실체가 더 궁금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그 배경을, 말보다는 말귀를 전해주는 언론을 원하는 것입니다.

* 2008년 9월 14일 아침 8시~8시30분, 경기방송/99.9mhz 라디오 칼럼 방송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