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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자료/火나는 뉴스

통일을 위한 프레임


 

통일을 위한 프레임

이주현(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인 죠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2004년도에 출판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는 이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을까? 바로 생각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프레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그는 정의한다.

 인간의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사색과 명상을 통한 깨달음의 차원도 있지만,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제공된 정보에 의해 형성된다. 즉 개인적인 분석과 선택이라는 차원도 있지만 동시에 그 선택과 분석의 근거를 제공하고 규정해주는 일종의 프레임(틀)을 통해 형성되게 마련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사고의 프레임은 어떤 것일까? 말로는 통일을 외치면서 반통일적 정당을 선택하는 왜곡된 정치구조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인지과학과 심리학을 가르치는 조지 레이코프의 분석은 이런 면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지난 7월 30일, 촛불정국의 분수령이 될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서울시 교육감 선거였다. 이 선거는 단순히 서울시 교육감을 선출하는 차원을 넘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세 달 가까이 이어온 촛불 정국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로 보았기 때문이다. 100만 촛불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 표로 나타나, 피로감에 젖어있던 촛불시위대들에게 촛불의 정당성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안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촛불의 패배였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결과를 놓고 ‘촛불의 패배’라고 규정하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결과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그 중 강남권 3개구의 결집된 표심이 승패를 갈랐다는 분석이 강하다. 무엇이 그렇게 100만 촛불의 표심을 거역하면서까지 표를 결집했을까? 바로 프레임 설정이 주효했다고 본다. 주경복과 공정택의 대결이 아니라 전교조에 대한 찬반이라는 프레임으로 선거정국을 이끌었던 것이 주효한 것이다. 실제 강남권 곳곳에는 반전교조 전선을 위한 공정택 후보의 선거 구호가 난무했다. 이명박 정부와 쏙 빼닮은 정책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전교조에 대한 심판이라는 프레임으로 선거가 치러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의(가치판단의) 프레임은 사학법 논쟁에서도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사학법의 정당성은 온데간데없고 ‘전교조의 사학재단 장악 음모’라는 해괴한 논리가 판을 쳤다. 시민단체나 당시 여당에서 조차 이러한 프레임을 벗어나질 못했고, ‘전교조의 사학재단 장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소극적인 논리로 대응했다. 여기서 ‘전교조는 참교육을 위한 교원노조가 아니라 교육계를 어지럽히는 비호감 단체’로 설정되었고 그 프레임은 대중들에게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12월 19일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선거구호는 ‘10년 좌파정권의 종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우파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 자리한다는 확신을 갖고 좌파도 아닌 정권에 좌파 딱지를 붙여 재미를 톡톡히 본 셈이다. 문제는 그 프레임 속에 담긴 ‘좌파는 나쁘고 우파는 좋다’라는 전제가 우리 사회에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한쪽 날개로 나는 새가 없듯, 세상의 이치라는 게 그러할 진데, 분단이라는 왜곡된 상황을 이용해먹는 이치에 맞지 않는 논리지만, 그게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인가, 아직도 좌파라고 하면 어깨가 움츠러들고 통일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빨갱이라 하면 기가 죽는 현실 아닌가?  

 아직도 제주4.3을 가르치고 광주5.18을 힘주어 말하면 친북좌파가 되고 빨갱이로 불리는 세상이다. 국민적 합의와 학계를 통해 검증된 진실이건만 ‘친북좌파’라는 딱지에 어깨가 움츠러드는 우리의 모습은 결국, 저들의 프레임에 놀아나는 꼴이 아닌가? 그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진보와 통일운동이 발붙일 틈은 자꾸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프레임을 설정해 놓은 이들을 원망하기 전에 거기에 갇혀있는 운동진영이 깊이 반성해야 할 지점이 아닐까? 우리가 ‘대중적 가치’와 ‘프레임’이라는 문제에 좀 더 집중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